증기 조선 연대기

'닌자슬레이어'의 매력을 스팀펑크 세계관으로 재구축하는 창작 가이드

Part 1: '닌자슬레이어' 미학의 해부 - 핵심 방법론

1.1. 매력의 근간: 양식적 극단성과 낯설게 하기

독창적인 세계관을 창조하는 과정은 단순히 기존 장르의 요소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 그 장르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방법론을 정립하는 데서 시작된다. '닌자슬레이어'의 독보적인 매력은 사이버펑크라는 장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이버펑크라는 익숙한 틀을 '서구인의 시선으로 과장되고 왜곡된 일본 문화'라는 필터를 통해 걸러내는 방식에서 비롯된다.[1]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야말로 독자가 추구해야 할 핵심 창작 원리이다.

'닌자슬레이어'의 세계 '네오 사이타마'는 이러한 방법론의 구체적인 결과물이다. 아이돌 곁에서 스모 선수가 춤을 추고, 기차 선두에 거대한 가면이 붙어있는 등의 묘사는 현실 일본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과장된 외부인의 시선을 통해 구축된 일관된 세계관의 일부다.[1] 이처럼 익숙한 요소를 비틀어 낯설게 만드는 접근법은 독자에게 신선한 충격과 함께 기묘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따라서 목표는 단순히 '스팀펑크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라, '닌자슬레이어'가 사이버펑크를 다루었던 그 방식을 스팀펑크라는 새로운 캔버스에 적용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1.2. '인살어(忍殺語)'의 힘: 언어를 통한 세계 구축

'닌자슬레이어'의 언어, 즉 '인살어'는 단순한 말장난이나 문체적 기교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관의 독특한 '아트모스피어(atmosphere)'를 형성하는 근본적인 장치다.[2] 이 언어는 세계의 이질성과 혼란스러움을 독자가 직접 체험하게 만드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인살어'는 몇 가지 구체적인 기법을 통해 완성된다. 첫째, 일본어와 영어를 부자연스럽게 뒤섞어 언어적 충돌을 일으킨다. 둘째, '다반사(茶飯事)'를 '다반 인시던트(茶飯 incident)'로 직역하는 것처럼, 익숙한 단어를 낯선 방식으로 해체하고 재조립한다. 셋째, '그윽하다(奥ゆかしい)'와 같은 특정 단어에 작품 내에서만 통용되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독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암호를 만들어낸다.[1, 2] 이는 단순한 번역투를 넘어, 세계관의 정체성을 언어 속에 각인시키는 고도의 세계 구축 전략이다. 매력적인 세계관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기술, 사회 구조뿐만 아니라 세계의 '언어'를 의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1.3. 서사적 연금술: 엄숙함과 부조리의 결합

'닌자슬레이어'의 서사는 상실과 복수라는 지극히 어둡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동시에 폭발사산(爆發四散)과 같은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설정과 문체 위에서 전개된다.[1] 이러한 극단적인 요소들의 병치는 작품에 독특한 깊이를 부여한다. 만약 세계가 마냥 우스꽝스럽기만 했다면 가벼운 패러디에 그쳤을 것이고, 서사가 마냥 어둡기만 했다면 흔한 복수극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러한 서사적 연금술의 핵심은 특정 개념을 논리적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데 있다. 작품 속 닌자는 단순한 암살자가 아니라, 인간 사회를 뒤에서 조종하는 반신(半神)적인 존재이자 초월자로 격상된다.[1] 이는 '닌자'라는 개념을 가장 극단적으로 해석한 결과이며, 이러한 과감한 설정이 부조리한 세계에 엄숙한 서사가 자리 잡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진지함과 부조리의 기묘한 공존, 이것이 바로 독자를 몰입시키는 강력한 서사적 장치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닌자슬레이어'의 매력은 하나의 복제 가능한 공식으로 정리될 수 있다. 그 공식은 [기반 장르] + [왜곡된 문화/역사적 렌즈] + [그 결과로 발생하는 언어적 인공물] = [독창적 세계 정체성]이다. 사용자의 목표는 이 공식의 변수를 교체하는 것이다. 즉, [기반 장르]를 '스팀펑크'로 설정하고, 이에 걸맞은 새로운 [왜곡된 문화/역사적 렌즈]와 [언어적 인공물]을 찾아내는 것이 과제다. 이 보고서는 그 해답으로 대한제국 시대의 개화기(Gaehwagi)를 제시한다. 서구의 산업혁명과 유사한 압력을 비서구적 문화권이 겪었던 이 시기는 왜곡과 충돌의 완벽한 역사적 무대를 제공하며 [3, 4], 당시의 혼란스러운 언어 상황은 새로운 언어적 인공물을 만들어낼 최적의 원재료가 된다.[5, 6, 7]

Part 2: 기초 캔버스 - 빅토리아 시대 런던에서 대한제국으로

2.1. 완벽한 유사체: 왜 개화기인가?

사용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팀펑크의 표준 배경인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런던보다 대한제국 시기(1876-1910)의 개화기(開化期)가 훨씬 더 적합하고 강력한 무대를 제공한다. 이 시기는 전통적인 질서가 새로운 기술 및 외세와 격렬하게 충돌하며 엄청난 전환을 겪던 때로, 서사적 갈등을 위한 비옥한 토양을 품고 있다.[3, 4, 8] 쇠락해가는 군주제, 영토를 잠식해오는 제국주의 열강,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급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 변화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이 겪었던 역사적 격동과 정확히 맞닿아 있으면서도, 비서구적 시각이라는 독창성을 부여한다.[3, 4]

2.2. 사회 구조의 지각 변동: 조선 계급 구조의 재해석

  • 몰락하는 귀족 (양반): 갑오개혁으로 법적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전통적 권력 기반을 상실한 양반 계층을 묘사할 수 있다.[3] 이들은 시대의 흐름에 밀려 낡은 관습에 집착하거나, 반대로 새로운 증기 기술을 익혀 잃어버린 영향력을 되찾으려 발버둥 치거나, 혹은 속수무책으로 빈곤에 빠지는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줄 수 있다. 이는 조선 시대의 다양한 계층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더욱 풍부하게 구체화될 수 있다.[9]
  • 신흥 부르주아 (자본가): 개항과 함께 부상한 상인과 산업가 계층은 새로운 세계의 주역이다. 이들은 종종 외세(특히 일본)와 결탁하여 부와 권력을 축적하며, 스팀펑크 장르에 흔히 등장하는 '탐욕스러운 부르주아' 악역의 원형을 제공한다.[3, 10] 철도 부설권이나 광산 채굴권 같은 이권을 둘러싼 암투는 이야기의 중심 갈등이 될 수 있다.
  • 도시 프롤레타리아 (민중): 농토를 잃고 수도 한성으로 밀려든 유민들은 새로운 공장과 철도의 노동력을 형성한다. 이들은 '펑크(punk)' 요소의 진원지가 된다. 열악한 노동 환경과 외세의 착취에 맞서는 이들 사이에서 비밀 결사가 조직되고, 저항 운동이 싹트며, 이는 산업 자본가와 제국주의 세력 모두에 대항하는 반체제적 정신으로 이어진다.[11, 12]

2.3. 음모의 거미줄: 대립하는 파벌들

  • 황실: 외세 공사들과 내부 파벌에 둘러싸인 채 '신구절충(新舊折衷, 옛것과 새것의 조화)'을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근대화를 이루려는 고종 황제가 중심에 있다.[4] 황궁은 금박을 입힌 태엽 장치와 서양식 건축물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화려하지만 편집증적인 공간으로 그려진다.
  • 개화파: 서구의 증기 기술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라 믿는 급진파. 이들은 종종 보수적인 황실과 충돌하며, 때로는 외세의 힘을 빌리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13]
  • 의병: 반외세, 반산업화를 기치로 내건 분산된 형태의 저항군. 이들은 증기 기술을 국가의 혼을 더럽히는 사악한 외래 문물로 간주하고, 공장 파괴(러다이트 운동과 유사하게), 철로 폭파, 요인 암살 등 게릴라 활동을 벌인다. 이들이 바로 이 세계관의 반체제적인 '펑크' 정신을 가장 순수하게 구현하는 집단이다.[3, 11]
  • 외세: 대한제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자원을 노리는 제국 일본, 제정 러시아, 영국, 미국 등의 대표들이 한성에 상주한다. 이들은 철도, 전신, 광산 등의 이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외교전과 첩보전을 벌이며 세계관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3]

대한제국의 실제 역사는 단순한 배경 설정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가 강력한 서사 생성기(plot generator)로 기능한다. '펑크'라는 장르의 핵심은 기술 발전이 야기하는 사회적 결과, 계급 갈등, 그리고 권력 구조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 있다.[11, 14] 대한제국 시대의 역사 기록은 이러한 주제들로 가득하다. 낡은 신분제의 붕괴 [3], 신흥 자본가 계층의 등장, 서구 산업혁명기의 노동 착취와 유사한 사회 문제 [15, 16], 그리고 제국주의에 맞선 폭력적인 저항 [3] 등은 이미 완성된 갈등 구조를 제공한다. 따라서 작가는 중심 갈등을 억지로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역사가 제공하는 이 생생한 갈등 구조는 이야기에 즉각적인 긴장감과 주제적 깊이를 부여하며, 대영제국의 영광을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일반적인 스팀펑크 서사와는 차별화된 독창적인 정치적 풍경을 만들어낸다.[17]

표 1: 빅토리아 스팀펑크와 '증기 조선' 개념 비교 분석

빅토리아 스팀펑크 관습 '증기 조선' 대응물 역사/문화적 기반
빅토리아 여왕 / 영국 왕실 고종 황제 / 대한제국 이씨 황실 (대한제국 황실) [4, 18, 19]
런던 한성(漢城), 수도 [4, 20, 21]
만국박람회 / 수정궁 (실패한) 산업 박람회 시도; 서양식과 전통 양식이 혼합된 경운궁(덕수궁) [4, 22, 23]
대영제국 / 식민주의 잠식해오는 제국 일본, 러시아 및 서구 열강 [3]
비행선 / 체펠린 장갑 증기 거북선(蒸氣龜船), 증기 방패연 비행체 [10, 24]
스코틀랜드 야드 / 탐정 경무청(警務廳), 한성 뒷골목에서 활동하는 셜록 홈즈 스타일의 사립 탐정 [8, 10]
미치광이 과학자 / 발명가 공학자로 전향한 비주류 실학자(實學者); 기계의 영과 소통하는 무당 [10, 25, 26]
러다이트 / 아나키스트 의병(義兵), 반외세 비밀 결사 [3, 11]
런던 안개 / 산업 스모그 공장과 증기 전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성의 석탄 먼지(炭塵)와 연기 [10, 27]
탑햇과 코르셋 톱니바퀴와 가죽을 덧댄 개량 한복; 개화파가 입는 양복과 중절모 [8, 10, 28]

Part 3: '증기 조선' 기술국의 구축

3.1. '광무(光武)'의 미학: 독창적 시각 언어

'증기 조선'의 시각적 정체성은 단순히 놋쇠와 톱니바퀴의 나열을 넘어선다. 이는 스팀펑크의 핵심 미학(놋쇠, 구리, 철, 태엽 장치)과 한국 전통 공예 모티프의 의식적인 융합을 통해 정의된다.[10, 28]

예를 들어, 증기기관의 외피를 정교한 자개(螺鈿漆器)로 장식하거나, 전신기를 옻칠한 목재 함에 수납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고급 전기 절연체로는 청자(靑瓷)가 사용되고, 건축에서는 전통 궁궐의 단청(丹靑) 양식이 철골 구조물 및 거대한 굴뚝과 결합된다.[22, 24, 29] 이는 기술적 차원에서 구현된 '한양절충(韓洋折衷, 한국식과 서양식의 절충)' 양식으로, 세계관에 독창적이고 깊이 있는 시각적 언어를 부여한다.[8]

3.2. 상징적 기술: 은둔 왕국의 기계들

기억에 남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비행선을 넘어서는 고유한 기술이 필요하다.

  • 장승 자동인형(長栍 自動人形): 마을 입구를 지키던 전통 장승의 모습을 본뜬 태엽 또는 증기 동력 자동인형. 이들은 도시의 경비병, 공장 노동자, 혹은 전장의 무시무시한 병기로 활용될 수 있다. 이는 스팀펑크의 자동인형/골렘이라는 관습을 차용하되 [10], 한국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 장갑 증기 거북선(裝甲蒸氣龜船): 이순신 장군의 전설적인 철갑선을 재해석한 것이다. 노 대신 거대한 석탄 연기를 뿜는 증기 엔진으로 구동되며, 장갑판 사이로 개틀링건과 증기 포가 돌출되어 있다. 이는 민족주의적 저항의 상징물로 기능할 수 있다.
  • 증기 화차(蒸氣火車): 전통 무기인 화차(火車)를 기반으로 한 이동식 포대. 화약 로켓 대신 증기 압축 시스템을 이용해 폭발성 포탄이나 소이탄을 연발로 발사한다.
  • 차분기관의 한국적 대응물, '천지계산기(天地計算機)': 서양 수학에 기반한 찰스 배비지의 기계와는 달리 [30, 31], 이 기계는 주역(周易)과 유교적 우주론의 원리에 따라 설계된 거대한 수력/증기 동력 기계식 컴퓨터다. 국가의 길흉을 점치고 행정을 관리하는 데 사용된다.

3.3. 기계의 숨결: 동력, 오염, 그리고 자원

이 세계는 석탄(石炭)과 증기(蒸氣)로 움직인다.[10] 이는 필연적으로 결과를 낳는다. 한성은 더 이상 고요한 수도가 아니라, 증기 전차(電車)와 공장에서 뿜어내는 매연으로 질식하는 시끄러운 대도시로 변모한다.[8] 북쪽의 탄광이나 벌목권 같은 자원을 둘러싼 쟁탈전은 정부, 신흥 자본가, 외세 간의 정치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주요 동력이 된다.[3] 이는 환상적인 기술을 지정학적 현실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

Part 4: 세계의 거주자들 - 변화하는 국가의 원형과 파벌

4.1. 낡은 세계의 새로운 역할: 캐릭터 원형

이 세계관 고유의, 즉시 활용 가능한 캐릭터 콘셉트는 다음과 같다.

  • 비주류 학자-기술자: 낡은 방식에 환멸을 느끼고 '천한' 기술자의 길을 택한 전직 유학자.[25] 그는 이론의 우아함과 기계의 지저분한 현실 사이에서 고뇌한다.
  • 제국군 저격수: 서구식으로 창설된 신식 군대의 일원. 증기 동력으로 개조된 맞춤형 소총을 다루지만, 여전히 낡은 충의(忠義)의 규율에 얽매여 있다.
  • 기계 무당(機械巫堂): 전통적인 무당이지만, 이제는 복잡한 기계 안에 깃든 '영(靈)'과도 소통한다. 변덕스러운 엔진을 달래기 위해 굿을 하거나 적의 공장에 저주를 내리는 의식을 행한다. 이는 세계의 초자연적 요소(무속 신앙)와 기술을 직접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이다.[19]
  • 외국인 탐험가/첩보원: 데이비드 리빙스턴과 같은 빅토리아 시대 탐험가나 [32, 33], '차분기관' 같은 소설의 첩보원을 모델로 한 인물.[30] 표면적으로는 조선의 경이로움을 '발견'하고 지도를 만들기 위해 왔지만, 비밀리에 자국 정부나 기업을 위해 일한다.
  • 신여성(新女性): 서구식 교육과 패션을 받아들여 전화 교환원이나 기자 같은 새로운 직업을 가진 여성.[3, 8] 그녀는 사회 변화를 상징하며 전통적인 가부장제 규범에 도전한다.[14]

4.2. 권력과 저항의 조직들

  • 기기창(機器廠): 1883년 실제로 설립된 기관으로, 제국을 위해 외국의 증기 기술을 역설계하고 개발하는 임무를 맡은 공식 국가 기관이다.[13] 눈부신 혁신과 관료주의적 정체가 공존하는 곳이다.
  • 한성전기회사(漢城電氣會社):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합자회사로 [4], 도시의 전기(가스등 대 전구의 대립이 시각적 모티프가 됨)와 전차 노선을 통제하는 거대 권력으로 성장한다. 기업형 악역의 완벽한 공급원이다.
  • 도깨비 길드: 신화 속 도깨비와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하는 장인과 기술자들의 비밀 결사.[34, 35] 이들의 창조물은 불가능한 역학과 민속적 마법이 결합된 전설적인 물건들이다. 부를 창조하고 불가능한 힘을 발휘하는 도깨비의 능력은 초자연적인 공학 기술로 재해석된다.[36]

이 세계관의 독창성은 한국의 도깨비 설화를 스팀펑크에 흔히 등장하는 '마법'이나 '초자연적 기술'의 틀로 활용하는 데 있다.[10, 37] 일반적인 마법사나 엘프 대신, 한국 고유의 혼돈스럽고 창조적인 존재를 도입함으로써 독특한 '민속 기술(folk-tech)'의 풍미를 더할 수 있다. 도깨비는 뛰어난 장인, 초인적인 힘의 소유자, 무(無)에서 부(富)를 창조하는 존재로 묘사된다.[34, 36] 이러한 설화적 특징들은 스팀펑크 개념으로 직접 변환될 수 있다. '초인적인 힘'은 거대 자동인형의 동력이 되고, '부를 창조하는 능력'은 불가능할 정도로 효율적인 엔진의 제작 기술이 된다. 이는 기술이 단순히 과학의 영역을 넘어, 초자연적 존재와의 계약, 의식, 관계를 통해 발현되는 신비로운 시스템을 구축하여, 단순한 '마법+톱니바퀴' 조합과는 차별화된 문화적 깊이를 부여한다.

Part 5: '개화체(開化體)'의 창조 - 세계의 언어적 영혼

5.1. 역사적 선례: 격변기의 언어

'닌자슬레이어'와 같은 독특한 언어 스타일을 창조하기 위해, 개화기라는 시대는 완벽한 역사적 근거를 제공한다. 당시의 언어는 전통적인 한국어, 한자어, 그리고 일본을 통해 유입된, 종종 잘못 이해된 영어 외래어들이 혼란스럽게 뒤섞인 상태였다.[5, 6, 7, 38]

5.2. '개화체'의 규칙

이러한 역사적 혼돈을 작가의 서사와 대사에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 문체적 규칙으로 정립할 수 있다.

  • 규칙 1: 일본어를 경유한 외래어: 영어 단어가 일본어 발음을 거쳐 차용된다. 'truck'은 '도락구(トラック)', 'cup'은 '고뿌(コップ)'가 되는 식이다.[7]
  • 규칙 2: 직역적이고 어색한 번역어: 새로운 개념에 투박하고 직설적인 이름이 붙여진다. '증기선(汽船)'은 '김배' 혹은 '화륜선(火輪船)'으로 불렸고 [7], '버터'는 '소젖기름'으로 번역되었다.[7]
  • 규칙 3: 코드 스위칭과 병치: 등장인물들은 한 문장 안에서 고풍스러운 높임말과 새롭고 기술적인 속어를 섞어 쓴다. 예컨대, 한 궁중 관리가 "폐하, 저들의 스팀 터렛(steam turret)이 실로 위협적이옵니다!"라고 보고하는 식이다.
  • 규칙 4: 전통 어휘의 재활용: '닌자슬레이어'가 '그윽하다'를 사용하듯, 전통적인 한국어 단어에 새로운 기술 관련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도깨비'라는 단어 자체가 강력하고 예측 불가능한 기계를 지칭하는 속어가 될 수 있다.

5.3. 서사와 대사를 위한 구체적 예시

이러한 스타일을 실제로 적용한 예시는 다음과 같다.

  • 서술: "한성의 밤은 탄진(炭塵)과 가스등의 빛으로 자욱했다. 개화파들은 그것을 '진보'라 불렀고, 노인들은 '도깨비불'이라 칭하며 두려워했다."
  • 대화: "이보게 김 서방, 자네의 새 오토마톤(automaton)은 정말 스고이(すごい)하구만! 엔진 소리가 아주 다이나믹(dynamic)해!"

Part 6: 서사의 직조 - 핵심 갈등과 '펑크' 테마

6.1. 중심 주제 동력: 전통 대 진보

이 세계관의 핵심 갈등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국가의 영혼을 건 두 가지 비전의 충돌이다. 모든 기술, 모든 인물, 모든 파벌은 이 투쟁에 얽혀 있다. 증기기관은 구원인가, 아니면 외세의 저주인가? 이는 기술의 결과에 대해 성찰하는 스팀펑크 장르의 보편적 주제를 반영한다.[39]

6.2. 증기 조선의 '펑크' 선언

세계관의 설정들은 '펑크'라는 정신으로 수렴되어야 한다.

  • 반제국주의: 투쟁은 내부의 적뿐만 아니라, 식민지화를 꾀하는 압도적인 외세에 맞서는 것이다. '펑크'적 행위는 거대 제국에 흡수되기를 거부하고, 기술적, 문화적 동화의 압력 속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려는 몸부림이다.[3, 11]
  • 계급 투쟁: 노동자의 땀으로 부를 축적하는 자본가에 맞서는 평범한 공장 노동자들의 싸움은 고전적인 '펑크' 테마이며, 이 시대의 역사적 현실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12, 14, 15]
  • 개인 대 시스템: 이야기는 이러한 거대한 역사적 힘에 맞서거나 그 속에서 길을 찾으려는 개인들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기계를 만들려는 학자, 파업을 조직하는 노동자, 쇠와 증기의 세계에서 낡은 방식을 지키려는 무당 등.

6.3. 이야기의 씨앗과 플롯 훅

마지막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할 몇 가지 구체적인 이야기의 시작점은 다음과 같다.

  • 폭주하는 자동인형: 제국의 장승 자동인형 한 대가 한성 거리에서 통제를 벗어나 폭주한다. 단순한 오작동인가, 아니면 의병의 사보타주인가?
  • 북방을 향한 경주: 새로 발견된 막대한 규모의 북방 탄광을 차지하기 위해 제국, 일본, 러시아 파벌이 증기 동력 차량과 첩보원을 동원해 치열한 경주를 벌인다.
  • 도깨비의 설계도: 도깨비가 직접 하사했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설계도가 기기창에서 도난당한다. 이 설계도는 외세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도, 수도를 파괴할 수도 있는 기계의 비법을 담고 있다. 주인공은 이를 되찾아야 한다.
  • 전신 속의 유령: 새로운 전신망을 통해 정체불명의 신호가 방송되기 시작한다. 산업 재해를 예언하고 국가 기밀을 폭로하는 이 신호의 정체는 뛰어난 적국의 첩보원인가, 아니면 네트워크 자체가 지성을 갖게 된 것인가? 이는 '차분기관'과 같은 선구적인 작품에서 다루어진 정보 통제라는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30, 40]